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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선 영상 얘기를 안할 수는 없겠네요. 내내 거기 홀려 봤으니까요.
극장에서 보려다 놓쳤는데... 역시 극장에서 봐야했던 거군요. OTZ
파이의 기묘한 체험이 굉장히 환상적으로 그려지고 있는데, 한 장면 한장면이 굉장히 묘해서 스틸로는 잡기 어려운 영상들이네요. 영상의 흐름 속에서 느껴지는거라...
바다에 하늘이 비쳐, 마치 구름 위를 표류하는 듯한 영상이며 멈추어버린 바다가 마치 거울처럼 사물을 비쳐내는 모습.... 그리고 동화같으면서도 미칠 것 같은 색감들.
정말이지 한 장면 한 장면에 다 눈길이 갑니다.
그 묘한 영상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비현실감이 온통 비유와 은유로 점철된 이 영화에서 꽤 중요한 키워드가 아닐까 싶네요.
영상이 환상적인 만큼 남겨진 현실은 지독합니다.
파이와 리차드 파커. 망망대해에 단 둘만이 남은 상황인데, 심지어 한 쪽은 포식자 한 쪽은 먹이....
호랑이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물고기를 잡아다 바칠 수 밖에 없는 파이. 그저 배 안에 앉아서는 아무런 먹이 활동도 할 수 없는 리차드 파커.
이 둘은 살아남기 위해 대립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공존합니다.
그리고 서로 죽여야 살아남을 것 같은 이들은 서로를 죽이지 않음으로서 살아남았습니다.
그리고 해변가에 닿는 순간 리차드 파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납니다.
그렇게 돌고 돌고.
산다는 게 그렇고 인간이라는 게 그렇고 자연이라는 게 그런가봅니다.
그렇게 이 영화는 파이의 온갖 기묘한 체험에 리차드 파커와의 위험한 동거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시사합니다.
여기까지는 그랬습니다.
좋은 영상에, 괜찮은 메시지를 찾아볼 수도 있는.
그런 영화였어요.
이 영화가 좀 다른 이유는, 사실, 마지막 반전에 있습니다.
파이는 두시간 넘게 영화를 다~ 지나고 나서, 갑자기 새로운 버전의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.
그리고는 묻습니다.
난 당신에게 바다 한복판에서 일어난 이야기 두 개를 했어요.
어느 것도 배가 왜 가라앉았는지를 설명해주지는 못해요.
또 누구도 어떤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증명할 수 없죠.
두 이야기 모두, 배는 가라앉았고, 우리 가족은 죽었고, 저는 고통받아요.
어떤 이야기가 더 맘에 드나요?
두시간동안 보여주고 들려준 영화의 다른 버전 이야기 하나가 끼어듦으로서 갑자기 파이가 들려준 모든 이야기와, 그 이야기를 듣는 소설가=관객의 심리적 상태/태도까지 모두 들쑤셔 놓았습니다.
종교에 대한 이야기 신념에 대한 이야기 인간에 대한 이야기 등등.....
굳이 이 영화가 [이야기 속의 이야기]형태를 취하면서 저런 환상동화같은 영상으로 이끌어온 이유일 것입니다.
P.S. 001
끝까지 곁을 주지 않는 우리 리차드 파커...
고양이를 기르는 1人으로써 그 귀염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.
사실은 호랭이 학대에 가까운 입수 씬과 폭풍우 씬에서 너무 안타까워 가슴을 쥐어뜯어야 했습니다. T_T
P.S. 002
어라라... 이거 이안 감독이었군요. 찾아볼 때 까진 몰랐어요.
그냥 호오~제법 괜찮잖은가... 이러고만 봤네요. ㅋ